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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

살아가는 시대

by Jasonbbak 2011. 11. 21.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삶을 끝내려 한다. 책상을 옮기고 책을 몇 겹 쌓아 올린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살포시 내려 놓은 뒤 맨발로 책위로 올라 선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모든것이 고요하다. 마음이 내려 앉는다. 한나가 죽었다.

 한나는 1922년에 태어났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1939년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1920년대 유럽, 독일은 전쟁의 회오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였다. 그 회오리 속에서 살아온 개인의 삶은 그 시대를 비켜갈 수 없었다. 제국은 개인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국가의 발전과 독재자의 생각만이 지배했다. 한나는 어린 나이에 2차  세계대전을 겪게돼고 전쟁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이제 겨우 스무살 언저리의 여자.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에서 태어나고 전쟁을 이겨내는 시대에 키워지고 전쟁을 통해 성숙해진다. 그녀에게 전쟁은 삶의 일부분이다.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이다. 전쟁의 고통은 겪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누구의 어머니는 전쟁영화를 절대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은 사람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도구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녀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워 보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남의 아픔을 돌 볼줄 아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다. 어느 날 15세 소년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한나와 마이클은 열정적이고 뜨겁게 사랑한다. 소년은 어린이에게서나 유행할 수 있는 성홍열을 이겨낼 정도의 나이였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공간에서 사랑을 나눈다. 어느날 소년은 그녀가 아무런 얘기도 없이 떠난 것을 알게 된다. 

 외할머니는 문맹이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당신은 일제 시대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이했고 6.25 전쟁을 경험하셨고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어린 우리를 키우셨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 몇 번인가 숫자와 글을 가르켜 드리려 했지만 늘 허사로 돌아갔다. 외할머니는 도움 없이 버스도 타지 못했고 어디에도 전화하지 못했다. 글을 모른다고 해서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불편 할뿐이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한나는 1920년대 그 어수선한 시대에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런 혼란한 시대에 제대로 교육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글은 모르지만 고집과 자존심은 남들 못지 않았다. 모르기 때문에 더 숨기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글도 몰라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실히 일하는 게 최선의 삶의 방식이었다. 성실히 일해서 주어지는 승진은 그녀에게 독이었다. 글을 모르니 사무직은 어림도 없다. 모른다고 말도 못한다. 남자를 떠난다. 모든것을 잃었다. 다시 낯선 세상에서 성실히 일한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 팍팍한 삶이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것일까? 자존심이 강했던 외할머니가 한나와 겹쳐진다.

 "수용소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어요. 수용소는 학교가 아니에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영화속 생존자가 하는 말이다. 수용소에서도 전쟁에서도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배우지 못하니 전쟁은 계속된다. 지금도 세상 어디에서는 자신의 옳은 이야기를 위해 상대방을 죽인다. 한나가 전쟁을 통해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살기 위해 일 했을뿐이다. 순수했지만 무지했고 문학을 좋아했지만 글을 읽지 못한 한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전쟁에서 살인을 방조하고 비난 받아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내린 결정이다. 세상에 버려지고 사랑하는 사람조차 잃어 버린 자존심 강한 여자가 마지막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그녀가 나쁘다는 것은 안다. 그녀가 불쌍했다. 글을 모르는 것이 불쌍한게 아니라 글을 몰라서 다른 선택을 못하는 그녀가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그녀가 남긴 7000마르크는 문맹퇴치를 위해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