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사람풍경>을 읽고
20대 초반에 정신세계사란 출판사 책들을 탐독했었다. 깊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에 대부분 그렇듯이 진지함은 있었던것 같다. 여러 책 중에 불교적 참선을 생활화해서 정신적 맑음뿐만 아니라 육체적 건강까지도 생각하게 하는 "생활참선"이란 책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출판사로 전화를 했고 저자와 전화를 나누고는 그 분의 집으로 찾아가 참선수련생이 되었다. 거창하게 무엇을 할려고 한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어렸고 호기심도 많았고 세상이 무서워서 내 안으로 나를 찾으려는 약간의 비겁함도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를 사로잡았던 또 한 권의 책이 영국의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라는 책이었다. 동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어떤 생물인지에 대해서 매우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인간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정신과 육체로 나눌수 있다. 나는 참선과 털없는 원숭이를 통해 나 자신을 알려고 젊은 치기를 부렸던 것이다. 참선수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 많아 같이 어울릴만한 부분도 없었고 알고자함의 깊이가 깊지 않다 보니 수박 겉핡기만 한참을 하다 자연스럽게 나가지 않게 되었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은 그 이후로 몇 권을 더 읽으면서 동물학적인 나를 알아보는 매우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 때 나는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던 것일까?
김형경의 사람 풍경을 읽으며 그 때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 풍경은 여행에 대한 글쓰기이며 사람에 대한 글쓰기이자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 긴 여행을 하며 스무살 언저리의 나 자신과 자꾸 대면하며 나에 대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여행은 나를 들뜨게 하기도 했고 심리적 압박일때도 있었고 후회와 슬픔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김형경 여행의 시작은 고대 로마의 지하묘지인 카타콤에서 출발한다. 시작 부분이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묘지는 매우 잘 어울리는듯 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을 의미하며 이 책이 전하고 싶은 무의식의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 지하 4층 깊이로 40킬로 미터 정도의 미로처럼 뻗어있는 무덤 여행. 그녀는 그것을 이질적이고, 거대하고,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라고 부르며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그러하다고 말한다. 첫 장을 읽으며 어둡고 습한 지하세계가 떠올랐고 그 여행을 초대하는 작가를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인정하던 하지 않던 무의식은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창고이자 보물창고이며 우리 생의 비밀을 더 많이 쥐고 있는 것이다. 김형경은 비전문가로서 배타적 전문영역인 정신분석을 26개의 장으로 나누었고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공간과 사람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차분하게 써 나가고 있다. 26개 비밀의 문을 하나씩 열어가다가 마지막에 나오는것이 자기실현이다.
"자기 실현이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 생을 보다 지혜롭고 풍족하고 의미 있는것으로 엮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일일 것이다." 김형경은 사람 풍경을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실현을 위해 필요한 창조성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인생이 60이나 70년쯤 되는 시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기획해서 사용하는가 하는 행위라고 한다. 자기실현, 창조성, 기획처럼 어려운 단어들이 책이 끝날때 즈음 쉽게 다가 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나로 살아가고 있다. 나를 규정지는 것이 내 안에 있는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나를 억누르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예전의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다.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람풍경은 잊고 있던 질문들을 무의식의 세계에서 건져 올려 주었다.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제대로 질문하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이 든다.
ps. 윗 글이 11월 1주 <반디 & View 어워드> 에 선정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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